2009년 9월 5일 토요일

스키터 데이비스 Skeeter Davis

개인적으로 요즘 대중가요를 보면 멜로디가 쉽고 반복이 많아서 쉽게 귀에 들어오는 노래만 판 치는게 마음에 안든다. 결정적으로 가수들 노래가 다 비슷비슷해지는게 싫다. 벨소리용 음원순위만 높이려는 그런 노래들...

내가 어렸을 때 토요일 저녁 다섯시쯤이었나? KBS에서 하던 지구촌 세계음악(?)이라는 프로를 좋아했는데 임백천 아저씨가 진행했던 걸로 기억된다. 외국가수들 뮤직비디오를 틀어주고 팝전문가가 나와서 유명한 팝가수들에 대한 비화나 일화를 얘기해주던 프로그램이었는데 그때 듣고 봤던 노래랑 가수들은 아직도 기억이 난다. 요즘은 케이블 방송이나 인터넷에서 얼마든지 구해서 들을 수 있지만... 오히려 그때보다 더 외국 노래를 더 못듣게 되는것 같다. 배철수 아저씨도 무릎팍 도사에서 그러지않았나... 요즘 아이들이 팝송을 안듣는다고... 물론 우리나라 노래도 좋은 노래가 많지만 외국 노래도 많이 접하고 들어야 결국엔 대중문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수준이나 인식이 높아져서 우리나라 가요도 발전될텐데 그런 점에서 많이 안타깝다.

 

 내가 처음 팝송을 좋아하게 된 계기가 된 노래가 있다. 스키터 데이비스의 'The end of the world'라는 노래인데 이은하라는 가수가 TV에 나와서 부른걸 본 게 계기였다. 어린 나이에 들었던 이 노래의 멜로디가 너무 좋아서 영어를 전혀 못하던 때였는데 제목을 어떻게든 외워두고 있었다. 그리고 친구집에서 발견한 올드팝송 테이프에 이 노래가 있는걸 발견하고 녹음을 해달라고 했고 어렸을 때 아빠가 이런 저런 책을 많이 사줬었는데 그 중에서 세계음악전집? 이라는 책에 팝송 파트에서 이 노래 가사가 있는걸 발견하고 내 생애 처음으로 팝송이란걸 외우게 되었다. 말 그대로 구하는 곳에 길이 있나니~ 였다. ㅎ 아니면 두드려라.. 그러면 열릴 것이다? ㅎㅎ 아무튼 내가 'the end of the world' 어렵게 외웠던 제목의 그 노래를 불렀던 가수가 '스키터 데이비스'라는 미국 컨츄리 가수였다.

 

 

 

스키터 데이비스(Mary Frances Davis)
O
가수
출생 1931년 12월 30일, 미국
데뷔 1960년 1집 앨범 'I'll Sing You A Song'
학력 딕시 하이츠 고등학교

 

 

스키터 데이비스는 켄터키주의 드라이 릿지라는 농장에서 Mary Frances Penick라는 본명으로 태어났다. 1950년대에 데이비스 시스터즈에서 데이비스라는 이름을 차용했으며, 그녀의 할아버지가 붙여준 닉네임- 마치 모기처럼 웅웅거리며 노래하면서 쇼맨쉽을 발휘했다는 의미인 스키터를 조합해서 스키터 데이비스라고 예명을 붙였다.

스키터는 인근의 켄터키주 코빙톤의 딕시 고교를 다녔고 베티 잭 데이비스를 만나게 된다. 그둘은 나중에 데이비스 시스터즈를 결성하게 된다. 그 둘은 RCA 빅터와 음반계약을 하게 되며 넘버원 히트송인 “I Forgot More Than You'll Ever Know”를 발표한다. 단기간의 성공에도 불구하고 동료이자 절친한 친구인 베티는 자동차사고로 죽게 되는 비극을 겪는다. 스키터 역시 이사고로 심각한 부상을 당하게 됩니다만 회복하고 스키터는 솔로로 재기하게 된다. 1957년까지 스키터는 컨트리뮤직에서 최고 탑가수중의 한 명이었다. 스키터는 당시로선 드문 오버더빙을 통해 하모니보컬을 녹음한걸로 잘 알려져있으며 친구였던 체트 애킨스의 도움 또한 컸다고 한다. 1959년에 Grand Ole Opry라는 컨트리 라디오 방송 프로그램 고정 출연하게 된다. “Set Him Free라는곡으로그래미상에 후보로 오르게 된다. 1960년 한 해 동안 스키터는 RCA사에서 가장 성공한 컨트리 가수였다. 41개의 컨트리챠트를 랭크시켰고 그중에서 13곡은 팝챠트에 랭크시켰다. 그 중에서 우리에게 가장 알려진 The End Of The World"는 컨트리와 팝챠트에 2위까지 오르는 대히트를 기록하게 된다.

"My Last Date With You", "Am I That Easy to Forget", "I Can't Stay Mad At You", "Gonna Get Along Without You Now", "What Does it Take", and "I Can't Believe That it's All Over" 등의 히트곡을 남긴다. 그녀는 총 다섯 번의 그래미 후보로 오르게 된다.

1973년에 스키터는 정치성을 이유로 방송에서 퇴출되게 되는 수난을 겪게 된다.(어떤 체포된 크리스챤의 무죄를 입증하기 위한 헌정곡을 불렀다는 정치적 이유) 그러나 75년도에 다시 참가하게 된다. 그 이후에 쇼는 2004년까지 계속됩니다. 1970년도에 스키터는 싱가폴, 스웨덴, 바바도스 같은 해외공연도 나서게 됩니다. 데이비스는 4번이나 결혼을 했다. Kenneth Depew와 처음 결혼을 했으며 Ralph Emery와 60년도에 그리고 64년 이혼,그리고 NRBQ 베이스 연주자 Joey Spampinato와 1996년도에 이혼했다.

85년작"She Sings, They Play"에 그들 둘의 협연을 느낄 수 있다. 그녀의 자서전”켄터키로 가는 버스요금”은 93년에 발표되었다. 데이비스는 독실한 기독교인이었다. 데이비스는 1988년이후 유방암과 투병을 시작되었고 2004년 Nashville, Tennessee hospice에서 숨을 거두었다. 그녀는 죽기까지 Franklin, Tennessee에서 살았다. 스키터의 대표작인 The end of the world는 많이 리바이블되었며 카펜터스에 의해 불리기도 했다. 비교적 최근에는 Agnetha Faltskog "My Colouring Book"앨범에서도 리메이크되었다.

 

 

 

                                                                                                           -출처 위키백과

 

 

위키백과에 나오는 친구이자 듀엣 멤버인 베티의 사망으로 충격을 받고 나온 노래가 이 'the end of the world' 라는 노랜데 이 곡으로 솔로로 재기했다고 한다. 어렸을 때는 가사가 참 묘하다고 생각했는데 나이들고 이 가사를 다시 보니 덤덤한 보컬이지만 친구를 잃은 절절한 슬픔이 가사 한 소절 한소절에서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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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노래를 잊을만하던 무렵 고등학교 음악시간에 졸리던 나의 눈을 번쩍 뜨게 한 일이 있었는데 무려 음악교과서에 이 노래가 실려있는 것이었다.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많은 사람이 사랑하는 노래였다는 뜻인데... 호오~ 아무튼 내가 어렸을 때 좋아했던 노래가 가곡과 클래식으로 도배되어있는 음악 교과서에 실려있는게 참 신기했었다. 아무튼 지금은 고인이 되어 이 세상에 없는 분이지만 내가 처음으로 팝송을 좋아하게 된 계기를 마련해준 고마운 분이다. 그리고 이렇게 좋은 노래를 불러줘서 고맙다고 전하고 싶다. 어렸을 때 올드팝을 좋아하던게 아직도 영향이 남아있는지 그 시절을 잘 모르는데도 유난히 60년대 70년대 분위기나 향취를 좋아한다. 케빈은 열두살에서 봤던 그런 분위기... 히피... 한국에선 통기타, 맥주 그런 것들...? 역시 나의 취향은 올드해~~~ 라고 생각했지만 난 샤이니 좋아함. ㅋㅋㅋ 수줍~ 나의 정체성은 뭐지? ㅎㅎㅎㅎㅎ

 

 

 

 

번외

Melanie Safka - The Saddest Thing (live)

 

어렸을 때 비슷한 시기에 좋아했던 또 다른 이별 송인데 한마디로 구슬픈 목소리에 구슬픈 멜로디. 그냥 심금을 울린다. ㅠㅠ 제목부터 포스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부분은 마지막에 '아아아~~~' 내지르는 부분인데 마치 한국인의 <한>과 같은 느낌이 든다.

 유투브를 돌아다니다 보니까 당시 라이브는 못찾겠고 내가 찾은 제일 최근 라이브가 오호~~~ 무려 한국라이브닷! 아마도 윤도현의 러브레터 같은데 이제 나이가 많이 들어서 그런지 옛날처럼 맑은 소리가 안나오는게 슬프지만 그래도 한번 클래스는 영원한 클래스라는 걸 보여주는 라이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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